[근조]롯데그룹 신격호(1번) 창업주 별세 신동주(6번) 신동빈(8번) 신유미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2020년 1월 19일 오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시작한 롯데를 국내 재계 5위의 재벌로 성장시켰지만, 말년에는 경영비리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주의 명언 중에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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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성격유형으로 보자면,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은 에니어그램 1번이다. 신 회장은 1세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위치한 신격호 명예회장 집무실. 아직도 이곳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란 글자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는 뜻인 거화취실은 신 명예회장이 기업가로 거듭난 후부터 줄곧 가슴속에 새겨온 생활 철학이다. 신 명예회장 모교인 일본 와세다대 교훈이기도 하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족으로 부인 씨게미스 하츠코 여사,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회장과 아내 조은주 씨,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아내 씨게미쓰 마나미 여사 그리고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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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동주​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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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아들 동빈​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롯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65)과 차남 신동빈 현 롯데회장(64)은 외모부터 다르다. 장남이 아버지 쪽을, 차남이 어머니 쪽을 더 닮았다는 게 중평이다. 다른 것은 외모뿐만이 아니다. 신동빈 회장마저 한때 “형님은 성격이 수비형이지만 나는 공격하는 게 좋다”고 말했을 정도로 성격 차이가 확연하다. 장남인 신 부회장은 다소 차분하고 신중한 학자 타입이라면. 차남 신 회장은 조용한 편이긴 하나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이 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보인 경영스타일은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둘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가 바로 결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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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왼쪽)과 신동빈 현 롯데회장.​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가족. 왼쪽부터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차남이 처음으로 권력의지를 드러낸 무대는 바로 결혼식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1985년 6월 일본 귀족가문 출신인 오고 마나미 씨와 결혼했다. 중매와 주례는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섰고, 축사는 당시 일본 총리인 나카소네가 맡았다. 결혼식 시간은 무려 7시간이나 걸리는 일본 전통 혼례 방식이었다. 이때 들인 돈은 1백억 엔(약 1000억 원)에 이른다. 신동빈 회장은 결혼식을 통해 일본 상류사회로 진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 주류 권력층에선 신 회장의 권력 의지를 높이 샀다는 평가가 당시에도 나왔다.​1998년 울산 마을잔치때 모인 롯데家 1998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열린 마을잔치에 모인 신 씨 일가의 단란한 모습. 한일 양국 롯데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의 난’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대비된다. 왼쪽부터 신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씨, 신 총괄회장,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아들 정훈 씨, 첫째 딸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부회장, 큰며느리 조은주 씨,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 규미 씨, 신동빈 회장, 둘째 며느리 시게미쓰 마나미 씨, 신 회장의 아들 유열 씨와 차녀 승은 씨.​반면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결혼식은 재계를 떠나서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조용한 편에 속할 정도다. 동생보다 결혼은 7년이 늦은 1992년, 서울 롯데월드 예식장에서 치렀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배우자는 재미교포 사업가의 딸 조은주 씨. 열 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이었다. 결혼식 당일엔 친지 외에 외부인은 통제했다. 당시 신격호 총괄회장이 한국인 며느리를 원했다는 보도 등이 나오기도 했다.​​지금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고, 차남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를 맡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이 한국롯데에서 먼저 실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구도가 깨졌다.​​성격 뿐만 아니라 외모 차이도 크다. 장남은 아버지 쪽을, 차남은 어머니 쪽을 더 닮은 편이다, 나이 차이도 크지 않고 친형제인데다가 아버지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는데도 비슷한 점 보다는 차이가 큰 점이 이색적이다.​혹독한 경영수업…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균형 깨져신격호 총괄회장은 이 둘을 모두 경영권 승계 대상자로 보고 모두 경영수업을 시켰다. 그는 두 아들들이 롯데그룹과 관계없는 기업에서 평사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경험케 했다.​​신격호 총괄회장이 어린 두 아들을 안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주 전 부회장, 신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회장.​장남인 신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미쓰비시상사를 택했다. 여기서 평사원으로 10년 동안 근무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80년 후반 들어 포천지 선정 세계 4위 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장남 신 전 부회장이 롯데그룹에 입사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87년 롯데상사 미국지사장으로 시작했고 2009년엔 롯데홀딩스 부회장으로 취임한다.​​차남 신 회장도 롯데가 아닌 일본 노무라증권이 첫 직장이다. 그는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7년간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보냈다. 그 역시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한 것은 형과 비슷한 시기인 1988년이다. 형과 달리 차남 신 회장은 1990년 롯데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비교적 과감한 의사결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장남 신 전 부회장과 달리, 차남 신 회장은 2004년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은 뒤 한국 롯데를 키우기 위해 제법 적극적으로 사업에 나섰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이마트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롯데쇼핑 상장 등도 성사시켰다.​​2000년대 중반 하이마트 광고. 신동빈 회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과감하게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로 조직 장악력을 높여왔다.​신동빈 회장은 롯데홈쇼핑·롯데손해보험·롯데주류BG을 차례로 출범시키면서 그룹의 사업 분야도 다각화했다. GS리테일의 백화점·대형마트 사업을 인수하는 등 과감한 인수합병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서 경영 능력면에서 먼저 두각을 드러낸 것이다.​​신 회장이 취임할 당시 한국 롯데의 매출은 약 23조 원이었으나 지난 2017년 68조까지 늘었다. 반면 일본 롯데는 5~6조 원 수준에서 매출이 정체되면서 대조를 이뤘다. 1948년 창업 이래 제과업 위주로만 운영된 일본 롯데와 달리 한국 롯데는 제과뿐만 아니라 호텔, 화학, 유통 등으로 다각화하면서 경쟁력을 더 끌어올렸다. 신동빈 체제가 우위를 가져가게 된 배경이다.​2011년 신격호 총괄회장이 정기인사를 통해 신동빈 당시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차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롯데의 위상이 커진 반면, 일본 롯데는 주력 제품인 껌마저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등 매출 규모 면에서 10배 차이 이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3년부터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로 일컬어지던 롯데제과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면서 경영권 분쟁의 시작을 알렸다. 2015년 1월 들어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되면서다. 이에 따라 신 부회장은 롯데그룹 내의 임원직 지위를 모두 상실했다. 롯데그룹 후계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한 일 롯데를 서로 각자 승계하는 것에서 신동빈 회장이 두 곳 모두 총괄하는 구도로 승계가 진행됐다.​신 명예회장의 복잡한 가족사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공식적으로 두 번의 결혼과 사실혼관계로 총 세 번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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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는 15살 때 ‘미스롯데’로 발탁돼 롯데가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의 전속모델로 활동하며 영화, 드라마. 쇼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던 그녀는 22살에 유학을 간다며 돌연 은퇴한다. 그리고 2년 뒤 신 명예회장의 아이를 낳았다. 바로 딸 신유미 씨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무려 37살이다.​신유미 씨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어렸을 때부터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형 미인이라 서미경과 꼭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전했다. 신유미 씨의 사생활은 노출된 적이 없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것만 알려졌다. 신 명예회장의 측근은 “(신유미 씨가) 수년 전 일본인 남자와 결혼해 2015년 12월에 아이를 낳았다”고 전했다. ​서미경 씨 모녀 뿐 아니라 신격호 명예회장 며느리들도 눈에 띈다. 신 명예회장의 맏며느리 조은주 씨는 미국 LA에서 미쓰시비 상사에 근무하던 시절 지인의 소개로 남편 신동주 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결혼 후 조 씨는 남편의 내조에만 전념하고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형제간에 경영권 다툼이 발생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조은주 씨는 치매 증상이 있는 신 명예회장이 성년후견인 확정판결을 받고 물러난 광윤사 이사로 취임하면서 롯데 관련사 경영에 관여했다.​둘째 며느리 시게미쓰 마나미 씨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 귀족으로 불린 화족 출신이다. 1873년 창업한 일본 굴지 기업인 다이세이 건설 부회장, 고문 출신인 오고 요시마사의 차녀다. 마나미 여사는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의 주선으로 신동빈 회장을 소개 받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